다녀오겠습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말을 하고 생텀의 문밖으로 나간다. 이제 생텀은 가끔 아무도 없는 공간이 되었다. 그 사실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분명 내가 가진 깊고 깊은 고독감, 외로움이 무생물에도 향하는 것일 테니까.
…
생텀 안에선 단순히 웅성거리던 소리가 정확한 틀을 갖추어 귀에 들어온다. 들리지 않았던 사람의 발소리까지 모두 귀에 꽂힌다. 평범한 운동화부터, 높은 굽의 구두 소리까지. 참 많은 사람이 오가는데 주변 건물과 맞지 않는 건축 양식인 생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게, 이것이 마법이구나 싶었다. 아주 옛날에, 나도 마법이 있었다면-, 까지 생각이 미쳤다가 커다란 자동차의 클락션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지각하는 건 사양이었으니 발을 빠르게 움직인다.
몇 개의 횡단보도를 건너고, 넓은 길목을 통해 지나가면 레스토랑이 하나 있다. 엄청나게 고급스럽진 않지만 그렇다고 주변의 건물에 비해 허름하지 않고, 적당히 큰 레스토랑. 원래 일을 하던 서빙 직원이 사고가 생겨 나오지 못할 거 같아 2주간 알바를 할 사람을 구한다는 말에 얼른 마법사에게서 허락을 받고 해 보기로 했다. 오늘이 이제 일주일이 되는 날이었다.
가볍게 손을 흔들면서 인사하자 직원들이 반겨준다. 앞서 서빙하던 직원과 그대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서로의 자리를 교환한다. 안쪽 직원 휴게실에서 레스토랑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서빙! 이라는 말에 급하게 나간다. 갑니다! 평소의 목소리 톤보다 살짝 높여 말하고, 떠나가는 손님의 테이블을 치운다. 앉아있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정신없이 일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을 하다 또다시 들리는 딸랑 소리에 창가로 고개를 튼다. 해가 조금 기울어진 무렵, 내 뒤를 담당할 다른 직원이 들어온다. 그를 환하게 맞아주며 손바닥을 가볍게 맞대어 짝, 소리를 낸다. 그 사람이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 다음에 내가 들어가서 유니폼을 벗고 잘 개어 넣어 일상복을 입은 채 사람들에게 인사한다. 딸랑거리는 종소리는 나가는 존재를 배웅하고 겨울바람의 찬 기운이 그 존재를 반겨준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아직 어둠이 내려앉지 않는 뉴욕 하늘을 바라보고 마법사가 보면 미간을 좁힐 만한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통금은 밤이 내려오기 전까지, 지금은 해가 떠 있는 시간! 생텀의 반대 방향으로 향한다.
얼마나 걸었는지는 몰라도 점점 해가 길어지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밤이 내려오기 전까지, 라고 두루뭉술한 통금을 준 덕분에 아르바이트가 끝나고도 잠시 어딘가를 구경할 수 있었다.
발을 옮기면 옮길수록 사람의 수가 많아진다. 오후와 저녁의 경계선인 시각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것이 저녁을 먹기 위함이든, 일이 끝나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함이든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은 꽤 큰 중심가라는 것은 확실했다. 화려한 노란 조명들이 길을 밝히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겹치고 겹쳐서 웅성거리는 소음을 만들어 낸다. 이런 화려한 곳 사이사이는 반대로 어두운 곳을 만들어내어 그 속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슬슬 눈에 익어가는 거리를 계속 돌아다닌다. 가만히 서서 바라보기만 하는 건 분명 수상해 보인다는 걸 알기에 같은 길을 뱅뱅 돌면서 거리를 구경한다. 같은 풍경이 아니냐고 하지만, 사람은 많고 이곳은 넓었으며 지나갈 때마다, 틀린 그림 찾기를 하는 재미가 있었다. 서빙 일로 계속 서 있다가, 앉아있지도 않고 돌아다니니 조금 욱신대긴 하지만 큰 문제는 안 되었다. 오히려 노랗고 하얀 조명들이 너무 반짝이는 탓에 눈을 아프게 하는 게 문제가 되었다. 사람이 조금은 적은 곳으로 가서 잠깐 눈을 감고 눈꺼풀을 꾹꾹 누른다. 환기된 시야로 눈을 한번 도르르 굴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그동안 다른 것에 정신 팔려 제대로 보지 못했던 가게 하나를 발견한다.
…
사람이 적은 곳이라지만 그래도 중심가라 많이들 돌아다니는 곳에 눈길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가게. 적당한 빛의 조명으로 장식된 가게를 사람들과 사이를 뚫고 지나가 문 앞에 선다. 문 옆에는 초록색 식물과 여러 가지 색들이 조화를 이루며 이 가게를 장식한다. 아, 여기 꽃집이구나? 가게에 들어가지 않고 그 앞에 진열된 식물과 꽃, 나무들을 바라본다. 작은 것도 있고, 들고 가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랗고 무거운 것도 있다. 그중에서도 이 찬 바람을 맞으며 밖에 나와 있는 꽃에 시선이 꽂힌다.
아직 생텀 밖으로 나갈 수 없었을 무렵, 이곳, 지구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어봤었다. 자연, 그러한 것들을. 그런 걸 왜 물어보냐는 눈으로 바라봤지만, 그저 웃음만 지어 보였다.
…
이곳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절이 있다고 했다. 지금은 겨울의 막바지를 달려가는 중이라는데 여러모로 문제가 생겨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건 내가 알 필요 없다고 자세한 이야기를 안 해주었지만… 약간의 착잡한 기분은 기분 탓인 것처럼 사라졌다.
겨울 다음에는 봄이랬다. 어쩔 수 없이 늘여서 말하는 꼴이 되었지만, 원으로 서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친절한 설명을 들었다. 마법사는 봄을 찰나지만 아름다운 계절이라고 말했다. 제대로 상상이 가지 않는 표현에 고개를 기울였더니 인터넷에 찾아보라는 말을 들었다.
인터넷이 뭔데요?
…젠장.
노란 장갑을 낀 손으로 미간을 집고 살짝 숙인 책 작은 한숨을 쉰 마법사는 이걸 어쩜 좋지, 란 표정-꽤 피곤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곤 포탈로 작은 구멍을 열어 손만 뻗더니 책을 얇은 책 한 권을 건네준다. 이 생텀과,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책. 글씨는 크고 삽화가 가득 들어가 있는 어린이 동화책을 받았다. 제목은 "아름다운 사계절" 이란 책이었고 계절마다 표현되는 외형들, 느낌들을 한가득 담은 책이었다. 봄은 분홍색, 여름은 빨간색 아니면 푸른 물색-바다색이라서 그렇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가을은 채도 진한 붉은 색과 갈색, 겨울은 하얀색이 주를 이뤘다.
마법사가 설명하길, 계절마다 대표적인 색으로 여겨지는 것으로 풍경의 삽화를 칠해 넣은 책이라고 했다. 짧은 동화책의 삽화를 눈으로 훑다가 한 그림에 손가락을 짚었다. 지금 이 겨울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봄, 여름, 가을에는 참 많았다. 이것은 나무고, 이것은 풀이고, 이거는? 모양은 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동그란 원을 중심으로 나뭇잎 모양보다 조금 뚱뚱한 모양 색의 잎들이 뻗어 나가는 그림을 가리켰다.
마법사한테 그것은 꽃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총칭해서 이러한 것들을 묶어 부르는 말이고, 더 세세하게 나누어져 있지만, 기본적인 꽃 몇 개만 알고 있으면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다고 했다. 내 생각에는 닥터도 잘 몰라서 대답해주지 않는 것 같지만 입을 다물기로 했다. 아는 것이었다면 물어보지 않아도 더 자세히 이야기했을 테니까.
겨울에는 꽃을 구할 수 없는 거네요?
세상에 따뜻한 곳은 많지. 꽃집에 가면 겨울인데도 한가득 꽃이 피어있을 거다. 풀들이나, 나무나.
여기에는 안 자라요?
정말 설명하기 귀찮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해 달라는 듯 눈을 마주했다. 마법사는 고개를 살짝 뒤로 꺾으면서 눈을 한번 위로 굴렸다가 결국엔 설명해주었다. 건물 속에서 지정된 공간이 아닌 곳에 식물이 들어오는 것이 어떤 걸 의미하는지, 키우고 싶으면 보통 화분을 쓴다는 말을 들었다. 결국, 해줄 거면서 왜 저런담. 속으로 웃은 것은 그에겐 비밀이었다.
사시려고요?
아, 아뇨. 여기서 꽃집은 처음 봐서 구경하고 있었어요.
하긴 여기에 꽃집이 별로 없긴 하죠. 사람들이 관심이 없는 것도 한몫하지만요. 오랜만에 꽃에 관심 가지는 사람을 봐서 반갑네, 시간 있어요? 안에서 차라도 타줄 테니 이야기나 하고 가라고요.
꽃을 구경하고 있으니 가게 주인인 것처럼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와서 살갑게 말을 건다. 차를 마시고 가라는 말에 긍정의 대답을 담으려다가 문득 하늘을 본다. 이야기하면... 분명 마법사가 으름장으로 놓으러 올 시간이었다.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하단 말을 건네며 내일 찾아와도 되겠냐 물어보니 좋다고, 그럼 내일 보자고 웃어주신다. 마주 웃어 보이면서 하늘을 다시 보고, 뛰어가야겠단 생각을 한다.
레스토랑을 지나 생텀까지 뛰어가니 숨이 꽤 차올랐다. 거리가 꽤 되는구나. 생텀 문 앞에서 후, 숨을 고르고 있는데 벌컥 문이 열리면서 닥터가 뭐하냐는 듯이 눈썹을 치켜올린다. 뛰어서 그래요, 뛰어서. 가볍게 대답하고 문과 마법사의 틈 사이로 들어간다. 꽃집 간 거로 뭐라 하진 않겠지, 란 생각이 들었지만 뭐. 나중 일이었다. 더 물어보지도 않으니 꽃집에 갔다는 사실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을 예정이었다.
또다시 "다녀오겠습니다," 를 외치고 생텀 밖으로 나간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기까지 이틀 남은 시점과 동시에 꽃집에 출석한 지 닷새가 되는 날. 오늘도 지각하지 않고 레스토랑에 가서 유니폼을 갈아입고 서빙을 한다. 좋은 손님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는 이전과 달리 얼마 안 된 사이에 손님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진다. 잠깐의 휴식 시간에 같은 마음을 가진 직원과 공유하며 킥킥대고, 다시 해가 약간 기울어진 무렵에 레스토랑을 나온다.
닷새째 출석이면 아주 익숙해졌다. 이제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생텀 반대쪽에 있는 꽃집으로 발을 옮긴다. 사람이 많고, 눈은 부신 곳에서 눈길이 별로 가지 않고, 여전히 은은한 빛만을 내는 곳으로. 문에 달린 종소리가 꽃집의 방문객을 알리고 가게 안의 퍼지는 코코아 향이 그 방문객을 기다렸다는 듯 반긴다.
…
숫기 없고 훌륭한 입담을 가진 두 사람은 급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다. 손님이 오지 않는 가게는 눈치 보지 않아도 좋은 수다 공간이 되었고, 서로가 기다리는 시간을 가져다주었다. 식물에 박식한 사람과 식물에 대해 무지하지만 관심이 많은 것. 이 간극은 두 사람의 튼튼한 연결 다리였고, 즐거움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항상 빈은 무언가를 사가진 않았는데 그 이유는 함부로 생텀에 가져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빈은 꽃을 사가도 둘 자리가 없고, 같이 사는 룸메이트의 눈치가 보인다고 하자 주인아주머니는 이해하면서 이곳에 있을 때라도 잔뜩 보고 가라고 해주었다.
…
오늘도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잔뜩 듣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했다. 다만 평소와 달랐던 점은 가게 아주머니가 편지 하나를 주었다는 것이다. 돌어가서 보라는 말에 품에 구겨지지 않게 소중히 넣고 고갤 끄덕인다. 천천히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가게에서 내 모습이 안 보이는 곳까지 도달하면 숨이 벅차도록 생텀으로 뛰어간다. 늘 아슬한 시각까지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뛰는 건 일상이 되어버린 뜀박질. 처음엔 힘들어서 후회했다가도 이제는 이것조차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언제 이렇게 뛰어보겠어.
그렇다고 매일 제 시각에 도착한 건 아니었다. 전에 한 번 평소보다 조금 늦은 적이 있는데 마법사는 내가 레스토랑에 오랫동안 있어서 급하게 뛰어온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러려니 넘어가 줬다. 물론, 그때는 향수 냄새가 심하다는 말을 했다. 그건 분명 향수 냄새가 아니라 꽃집의 향이었을 것이다. 마법사는 그 직원이랑 오래 붙어있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고 나는 고갤 끄덕였다. 그 직원은 어디에도 없으니 따지고 보면 항상 지켜온 수칙이었다. 하지만 그건 꽃집의 향이었으니 사라질 리도 없었다. 요즘은 들어가서 마주할 때마다 미간을 찌푸리는 마법사를 본다.
미간이 좁혀진 채로 늙어가면 어쩌려고 자꾸 찌푸린담?
이제 슬슬 밖으로 나가기 싫다고 할 때가 된 거 같긴 했지.
아잇, 농담도 몰라요?
방에 겉옷을 걸면서 받은 편지를 꺼낸다. 편지 같은 건, 얼마 만이더라. 눈을 깜빡이며 편지지를 뜯지도 않고 몇 분간을 바라본다. 코끝에 익숙한 향이 느껴진다. 꽃집의 향이 그대로 배어있는 편지. 작게 미소가 피어오르고 그 탓에 더욱 뜯어보기가 어려워진다. 이렇게 적어서 말을 전하는 일은 나에겐 꿈도 꿀 수 없는 일인데. 이 속이 비어있진 않을까? 편지지 입구를 하염없이 만지작거리다 눈을 꾹 감고 이내 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뜯어낸다.
그 속엔 새하얀 종이가 들어있다. 당연히 이게 편지겠지만. 혹시 몰라 문을 잠그고 맨 아래쪽 서랍을 열어놓는다. 가볍게 숨을 내쉬고 종이를 조심스럽게 펼친다. 약간은 투박하고 정갈하다고는 못하는 글씨체로 편지가 쓰여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 가치를 떨어뜨리긴커녕 분명 더 높일 것이 분명했다. 침대에 풀썩 누워서 편지를 읽어내린다. '편지를 너무 오랜만에 써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를 시작으로 평범한 편지글이 쓰여있다. 발끝을 까딱대며 읽다가 한 문장에서 시선이 고정된다.
'이 가게를 정리하려고 해요.'
…
그 아래엔 그 이유가 설명되어 있었다. 주변의 과도한 화려함에 자신의 가게가 묻히는 건 당연하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관심이 적으니 홍보하여도 광대가 될 뿐이라는 말. 사실 가게 정리는 원래부터 예정되어 있다고 했다. 내일모레 가게를 철거할 예정이지만 그러기 일주일 전에 내가 나타났다는 말까지.
자필로 적어 내린 편지에는 그 일주일의 감상이 담겨있었다. 정말 소중히 여겼던 자신의 꽃집의 끝이 외롭지 않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말과 손님이 없어 문을 닫는 경우, 그 가게는 정말 외롭게 떠났는데, 자신은 그렇지 않아서 정말 기뻤다는 말, 내일은 우리가 마지막으로 보는 날이라는 씁쓸함도. 이렇게 말하게 되어서 미안하단 말로 끝이 맺어진다.
편지를 다 읽었음에도 덮지 못하고 계속 바라만 본다. 글이 들어오지 않음에도 그저 투박한 글씨체를 보고 있으면 지독한 공허함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렇게, 지금의 저 사람과 나의 관계는 선명함에도 분명 얼마 지나지 않으면 내 이름도 가물가물해질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가면 완전히 존재가 기억에서 지워지겠지. 나만 관계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문득 궁금해지는 게, 이 사람이, 가게가 철거될 때를 돌이켜본다면 그때는 이 편지에 적혀있는 것과 같은 감정이 들까 싶어진다. 내가 없어짐에도 자신의 가게가 외롭지 않게 떠나갔다고 느낄지, 아닐지. 이런 건 물어본 적이 없었다. 날 잊어버린 사람에게 다시 찾아가는 것만큼 미련한 짓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해보지 않았다고는 말 못하지만 그렇다고 아는 것은 아니다. 분명 그런 행동은 아주 오래전에, 내가 기억도 못할 만큼 오래전에 했을 것이기 때문에.
다녀오겠습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말을 하고 생텀의 문밖으로 나간다. 오늘은 꽃집에 가는 마지막 날이었다.
같은 시간에 레스토랑에 들어서고 같은 직원과 같은 일을 하면서 어느 새부턴 별생각을 하지 않고도 여러 일을 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주문표 읽기라던지, 그릇 치우기라던지, 물걸레질이라든지. 그러면 당연한 듯이 생각에 빠지는데, 오늘 그 시간을 차지하는 것은 꽃집이었다.
편지에 적힌 것처럼 그 꽃집은 사람이 많이 오가는 길목에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적은 곳이었다. 게다가 주변 건물은 자꾸 더 화려해지는데 꽃집은 여전히 은은한 조명에 어떤 홍보도 못 하는 처지였으니 지금까지 버틴 것도 기적이었을 테다. 납득이 가는 이유면서 납득하기 싫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내일부터는 가지 못할 수도 있는데도, 그 꽃집은 여전하길 바랐다. 여러 가지로 뒤섞인 감정들이 물걸레질에 묻어나기라도 한 듯 오늘따라 바닥이 잘 마르지 않는 착각이 들었다.
…
오늘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하면 다음 시간대의 직원이 온다. 가볍게 기지개를 켜고 일상복으로 갈아입고. 카운터에서 나가기 전에 나를 고용한 사람이 부른다. 갑자기? 의문이 들어 가만히 서서 고개를 갸웃하고만 있으니 친절하게 웃으면서 수고했다고 말한다.
아르바이트가 오늘까지였나? 내일까지 나오는 게 아니냐고 물었는데,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있다던 원래 직원이 빨리 회복이 되어서 내일 나올 수 있다고, 그래서 내일부터는 나올 필요가 없다는 설명을 해준다. 내 손에 2주 치 주급이 담긴 봉투를 쥐여주고 퇴근해보라는 듯 등을 툭툭 쳐주지만, 발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저 하루 안 하는 건데-, 아직 말을 끝내지도 않았는데 고용인은 웃으면서 생각보다 내 덕을 크게 봤다고. 그런 거에 대한 보답이라고 한다. 주급이 담긴 봉투를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옅게 웃으면서 고갤 끄덕인다. 역시 덕분에 일하는 동안 편했다고 하면서 가게 직원들과 인사한다. 운이 좋으면 또 봐요, 라고 말을 남기고 꽃집으로 발을 옮긴다. 오늘은 어제보다 날이 조금 더 우중충하고, 기온이 내려갔나, 괜히 어제보다 살이 떨리고 밝은 조명에도 흐린 길이었다.
오늘, 꽃집 방문 이후부터는 바깥엔 더 이상 내가 있을 곳이 없어진다.
선명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듣다가 꽃집으로 들어가면 모든 소리가 차단된 듯 흐릿한 웅성거리는 소리만이 들린다. 그것도 꽃집 안에서는 작게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그것들을 다 덮어버린다. 늘 그렇듯 반갑게 맞아주는 말에 늘 그렇듯 반갑게 화답하지만 우리는 알았다. 그 속에는 감출 수 없는 아쉬움이 서로에게 담겨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테이블에 나를 앉히고 평소처럼 따라주던 코코아가 아닌, 새하얀 종이들을 가져온다.
종이꽃 만드는 방법 알려주려고요.
종이꽃이요?
둘 자리가 없고, 룸메이트가 있다면서요. 그럴 땐 이거만 한 게 없거든요.
여러 장의 종이 중에 한장을 내게 건넨다. 따라 해보라면서 흰 종이를 아주머니가 먼저 접는다. 그걸 그대로 따라서 접는다. 하나하나, 천천히 꽃을 만들어가는 손길을 기억하며 따라간다. 조금은 복잡하고, 조금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새 서로 종이꽃 한송이를 만들었다. 처음 만든 사람의 것이라는 티가 나게 조악한 내 꽃과 달리 정갈하고 예쁜 모양의 꽃이 눈앞에 있다. 톡톡 건드려보다가 내 쪽으로 그 꽃을 밀어주는 손길을 그대로 받아들여 조심스럽게 들어본다.
종이긴 해도 예쁘지 않나요?
종이라서 더 예쁜 거 같은데요?
늘 생각하지만 이렇게 꽃을 좋아하고 식물에 관심이 많은데 어떻게 관련 지식이 하나도 없는지 궁금하다니까?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답은 하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따스한 눈빛으로 말을 하지 않는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연다. 우리는 또 일상을 이야기한다. 오늘은 이런 일이, 오늘은 이런 일이. 하지만 오늘은 가게 속 식물을 구경하지 않는다. 자리에 앉아서 오로지 꽃집의 향에만 집중하며 종이가 접히는 감각을 익히고, 서너개의 종이꽃을 그 자리에서 만든다.
…
시간이 참 빨리 가죠?
믿기지 않을 정도로요.
하늘을 바라보니 생텀으로 돌아갈 시간이 왔다. 떠나기 전에 봉투에 종이를 여러 장 담아주고 따뜻하게 꼭 안아준다. 아주머니의 어깨너머로 서너개의 종이꽃을 바라보다 포옹이 풀리면 아주머니께 받은 종이꽃까지 모두 테이블 위에 예쁘게 정리한다. 가져가지 않냐는 말에, 이게 있으면 내일도 이 가게는 외롭지 않을 거 같아서요, 라는 대답을 건넨다. 그리고 나는 우주에서 왔기 때문에 식물에 대해 무지했던 거예요, 라고 말해주니 아주머니는 겨울이 떠나가라, 따스하고 호탕한 웃음을 지으면서 배웅해준다.
우주에서 온 빈, 아름다운 지구에서 즐거운 기억이 되었길 바라요.
오늘도 뛰어서 생텀으로 들어간다. 오늘은 마법사가 문 앞에 없다. 다행인 건가? 속으로 가볍게 숨을 쉬고 불이 붙어있지 않은 벽난로 앞 테이블에 종이가 여럿 담긴 봉투를 올려둔다. 오늘은 차를 마실까. 도르르 눈을 굴리고 차 대신 코코아를 택한다.
간이부엌에서 코코아 가루와 따뜻한 물, 컵을 쟁반에 가지고 나오니 마법사와 마주한다. 일 끝났어요? 방금. 아저씨도 코코아?
…
벽난로에 불을 지핀 마법사가 테이블 위 봉투에 눈길을 주지만 그에 대해 설명을 하기 전에 따뜻한 코코아가 담긴 컵 한 잔을 마법사 앞에 두고, 다른 한 잔은 내려놓기 전에 한 모금을 한 뒤에 제 앞에 둔다.
요즘은 잘 마시지 않는 것 같더니.
오늘이 아르바이트 마지막 날인 기념으로 다시 마시려고요.
내일까지 아니었나?
맞는데, 원래 일하던 분이 다시 일할 수 있다고 해서요. 주급은 2주 치로 받았어요.
마법사도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시면서 눈썹을 으쓱인다. 그렇군, 이란 의미겠지.
저 봉투는 직원들한테서 받은 건가?
아뇨? 꽃집에서 받아왔어요.
꽃집?
아르바이트 끝나고요. 밤이 오기 전에 돌아오라고 했으니까 해가 아직 떠 있을 때 후딱 다녀왔죠.
어쩐지 늘 음식점이랑 어울리지 않는 향이 나더라니.
마법사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 마음에 들지 않는단 표식으로, 분명 자신이 허락해준 곳은 아르바이트 장소뿐인데 다른 곳도 돌아다녔다는 소리가 걸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 잘못인가.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올리면서 모르는 척 어깨를 으쓱였다. 아저씨가 통금만 정해줬길래요. 뻔뻔스럽게 하는 말에 어이없다는 듯 눈을 깊게 감았다 뜨지만, 고개를 살짝 저으면서 됐다는 듯이 바라본다. 가볍게 발을 굴린다. 그러면서 가져온 종이 한 장을 꺼낸다.
…
마법사는 뭐하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단지 한 쪽 눈썹을 까딱이며 바라볼 뿐이었다. 웃기게도 그 행동의 의미를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나는 설명했다. 그 꽃집 아주머니랑 친하게 지냈다고, 그런데 거기가 문은 닫으니 그 주인분께서 말동무가 되어주어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여기엔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 꽃을 못 산다 한 게 마음에 걸렸다고 종이꽃 접는 방법을 알려주었다는 것까지.
말을 하면서 종이꽃을 접었다. 마법사에게 같이 접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것이 배려라면 배려이고 기만이라면 기만이겠지만 마법사는 알 것이다. 그 어떤 의미도 담기지 않은 행위라는 걸. 새하얀 종이로 조금은 복잡하게, 잠시 멈칫거리기도 하지만 결국엔 틀린 점 없이 완성한다. 정확히 그어진 접힌 선들이 꽃잎을 만들어내고, 시중에서 팔지 않는 것을 만들어낸다. 빙그르르, 손끝에서 한 번 돌려보고, 떨어지기 전에 가볍게 잡고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차를 마시는 마법사와 눈을 마주하며 그것을 내어준다.
마법사가 미동 없이 컵에 담긴 코코아를 한 모금한다. 나도 미동 없이 마법사를 바라본다. 기이하게도 얼굴을 마주하면 간단한 의사소통은 표정, 눈빛으로만 취했다. 대화가 필요한 사이이면서 이런 것은 대화가 필요 없을 정도로 파악하는 것은 서로의 관찰력이 비슷한 덕분이겠지. 노란 장갑이 하얀 종이꽃을 조심히 든다. 그리고 역시 살펴보다가 고갤 살짝 까딱이며 다시 나를 바라본다.
종이로 만든 꽃이에요. 별로예요?
내 앞에서 만들었는데 그걸 모르겠어? 이걸 왜 나한테 주냐는 거야. 내가 어떤 것에 의문을 가진 건지 알면서 귀찮게 굴지 말고.
난 몰랐죠? 말해줘야지 알지 않을까요?
너부터 하면 고려해보지.
받아칠 거리는 없었다. 그냥 차 한 모금과 대답을 함께 넘겼다. 마법사의 시선은 나에게 있으니 알 것이다. 나의 대답은 알겠다는 것도, 싫다는 것도, 그 무엇도 아니란 것을.
꽃은 시드니까 종이꽃을 줬어요.
그러면 조화를 사 오면 되는 일이지.
조화는 안 시들잖아요.
종이꽃 만드는 방법과 정신을 교환한 건가.
아니거든요.
그럼 종이꽃도 시들지 않는다는 걸 알 텐데.
아뇨, 종이는 시들어요. 정확하겐 낡아간다고 하죠? 실온에 두면은 천천히 뭉개지거나, 습기를 먹어서 쭈그러들거나 그러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조화도 같은 거지.
종이가 조화보단 빠르잖아요. 조화는 너무 오래 걸려요.
가볍게 티 테이블에 손가락을 두 번 친다. 시선은 옆에 벽난로로 잠시 옮겨갔다. 마법사는 아무 말이 없다. 내가 할까, 말까 고민하는 말이 있다는 걸 아는지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기다려준다. 좋은지, 안 좋은지. 결국엔 나도 말을 한다는 걸 알아서 그런 건지. 다시 종이 한 장을 꺼낸다. 천천히 손을 움직인다. 다시 손이 종이꽃을 만들어간다.
그냥… 그 종이꽃은 하루하루 시들어갈 테니까 소중히 여겨줬으면 해서 준 거예요. 모든 것엔 시간이 있고 시간에 구애받으니까. 끝이 있기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잖아요. 오랜만에? 나도 그런 거 해보고 싶었어요. 생화의 끝은 너무 가까이 있고, 조화의 끝은 너무 멀리있으니까. 종이꽃이 딱 적당하죠. …근데 이런 게 듣고 싶어요?
외계인의 생각을 들을 기회가 많은 건 아니니까. 들을 수 있을 때 들어봐야지. 그리고 이거, 내 방의 분위기와는 전혀 안 어울리는군.
두기 싫다는 말을 이렇게 하시네. 싫으면 문 앞에 달아두던지요.
그건 더 싫어.
그러면 내가 준 걸 버릴 거예요?
못할 것도 없지.
안 그럴 거 알아요. 굳이 그렇게 거짓말 안 해도 되는데 왜 자꾸 한담?
마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약간은 짜증을 부리는 것처럼 탁, 소리 나게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방으로 들어가려나 보다, 하며 눈을 마법사에게 고정해 쫒으니 손을 가볍게 젓는다. 들어가라는 의미를 함께 던지며 앞에 찻잔을 치우고 불씨를 누그러뜨리는 행위를 동시에 한다.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허리를 세웠다가 아직 온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벽난로 앞 테이블에 한쪽 팔을 베고 시선을 약한 불빛에 던진다. 발걸음이 점점 멀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방금 만든 종이꽃을 만지작거리며 가만히 불만 응시한다. 테이블에 꽃이 하나인 걸 보면, 가져간 듯싶었다.
마법사라면 이해하겠지만 말할 수 없는 생각들이 있다. 이건 당연한 것이고, 그에게도 당연할 것이다. 그 또한 그의 생각을 이해해줄 사람은 있겠지만 말할 수 없는 것들이라 침묵을 유지하는 것일 테다. 그래서 그와 나는 일정한 선이 있다. 결코 캐묻지 않는 한계선. 기다림만으로 밝혀지지 않는 선 너머. 나의 선 너머에는 끝을 바라면서 끝을 원하지 않는 감정이 담겨있다. 어떻게 이것을 말하겠는가.
…
어떤 것이 아름답고, 소중하게 대해지는 이유는 그것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끝난 것을 다시 살려서 이어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고,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였다. 그래서 생화를 가져올 수 없었다. 그 꽃집이 문을 닫았으니 새로운 꽃은 없고 그저 시들어버려 끝나는 생명만 남을 터였다. 연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테니 그 끝을 내 눈으로 보고 싶진 않았다. 실소가 터져 나왔다. 끝을 동경하고 바라면서 끝은 보고 싶지 않다니.
손끝을 맴도는 종이꽃을 살짝 눌러본다. 쉽게도 뭉개지는 그것은 계속 누르자 납작한 종이에 불과해진다. 이런 것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오래된 습관이었다. 내가 가진 깊고 깊은 고독감, 외로움이 무생물에도 향하는 것뿐인 행위. 종이꽃은 원래도 종이에 불과했다. 아니, 그냥 종이를 여러 번 접어서 어떠한 모양을 만들어 낸 것만으로 더는 그냥 종이가 아니게 된 것이다. 아니, 아니, 아니… 서로가 서로에게 반박하는 모순의 끝을 달리는 생각에 손을 접는다. 주먹을 쥔다. 그 속에 종이꽃은 더 구겨지고, 구겨져서 더 이상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다.
…
다가오는 발걸음이 들린다. 일어나기 싫은데. 팔을 베고 있는 머리가 무겁다. 저 불에 시선을 고정하고 그렇게 평생을 있고 싶은 우울감이 든다. 가볍게 머리를 치고가는 망토덕분에 그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네에, 일어나겠습니다. 구겨진 종이를 벽난로 속에 던진다. 재가 되어 사라질 종이꽃이었던 것. 그 속에 내 생각들이 담겨 모두 타버렸으면 좋겠다.
마법사를 따라 생텀의 2층으로 올라간다. 발이 무거워 약간은 느린 발걸음으로 뒤따라가자 마법사가 그것을 맞춰주며 앞장선다. 누가 그의 껌딱지 아니랄까 봐 붉은 망토도 제대로 따라오라고 망토 끝자락으로 내 팔목을 잡아당긴다. 부드러운 천의 감각, 그것이 고정된 인간 마법사. 옆머리가 흰색이면서 염색이 아닌 인간. 참 기이하기 그지없건만 따지고 보면 내가 바라는 것보다 기이한 것은 없을 터였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관계. 당신과 나의 관계가 생화의 아름다움을 담고, 종이꽃의 적당한 끝을 가지며, 조화의 불변함을 담았으면 한다. 생생하고 불변하는 끝을 바란다. 제 손목을 감싼, 다른 천을 덧댔는지 색이 약간씩 다르고 바느질한 흔적이 있는 망토. 저 망토와 마법사의 관계를 바라는 걸지도 몰랐다. 바뀌고 고쳐지지만, 여전히 살아있고 곁에 있을 수 있는. 그의 곁에서 늘 의미를 갖고 불변하며 끝을 함께할. 쓸데없는 잡념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끝을 맺길 바랐다. 나의 삶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관계까지 원하는 건 분명한 욕심이었다.
성도 없이 그저 빈, 한 글자로 살아온 것을 채찍질한다. 그런 관계를 바라는 건 명백한 욕심이고 이기라고. 지금은 오로지 끝이 있는 삶을 바란다는 궁극적인 행복만을 상기시킨다.
쓸데없는 생각 마.
무슨 생각이요?
땅굴 파는 생각.
계단을 다 올라서 서로 마주한다. 마법사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빤히 저 우주의 눈을 바라보다가 가볍게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이고 내 방으로 들어간다. 그는 남의 생각이나 마음을 읽는 취미는 없다고 하는데, 가끔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방금 같은 상황에서는 특히.
땅굴 파는 생각이라. 기이할 정도로 마법사는 나를 잘 안다. 나는 오랫동안 세상을 거쳐오며 관찰력, 통찰력을 길렀다 하더라도 아직 반백 년도 안 산 사람이 어떻게 파악하는지. 재능의 영역을 뛰어넘은 감. 그것은 결코 타고날 수 없다. 그 사람의 눈은 나보다도 더 많은 세월을 살아온 것처럼 깊다. 우주의 눈, 우주를 담은 두 가지 색의 눈은 기이할 정도로 나를 너무 잘 꿰뚫어 보니 자꾸만 어떤 희망을 품는다.
…
문밖으로 마법사의 발걸음이 멀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벽난로 앞에 엎어져 있을 때 제게 다가온 그 발소리가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머릿속이 비디오처럼 돌아간다. 아까 전 상황을 머릿속에서 상영하려는 듯 비디오가 되돌아가다가 멈추고, 다시 영상을 재생한다.
벽난로 앞에서 구긴 꽃을 시작으로 영상이 재개된다. 더 이상 손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음에도 괜히 한 번 쥐락펴락해본다. 영상은 모든 감각을 상기시킨다. 종이가 으스러지는 감각을 일으키고, 걸어오는 마법사의 발걸음이 커지는 소리를 재현한다. 약한 불꽃의 따스함과 무거운 머리를 드는 모든 감각을 떠올리고, 꽃을 벽난로 속에 던지는 감각을 잊지 않게 한다.
모든 것은 시간에 구애받고, 모든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머릿속 비디오의 재생도 내가 본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한 번씩 볼 때마다 영상은 색이 바래지고 흐릿해진다. 나는 그런 순간을, 상기시키는 이러한 모든 순간을 사랑한다. 끝없이 숨 쉬어 온 나를 증오하면서 내가 있는 주변을 사랑한다. 그렇게 재생된 과거의 기억은 더 흐릿한 기억의 영상도 끌어온다. 그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문에 기댄 채 그대로 미끄러져 차가운 바닥에 앉아서 영상을 감상한다. 온몸에 들어오는 과거의 기억, 최근의 기억 모두를 받아들이고 눈을 느리게 감는다. 손끝까지 전달되는 그때의 감각을 떠올린다.
…
그에게 모든 것은 아름답다. 그는 자기의 생을 제외하고는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것은 없다고 믿고, 그것은 이 계의 신격을 제외하고는 사실이었기에 그의 생을 제외한 모든 것을 아름답다고 여긴다. 그 또한 아름다움의 의미가 퇴색될까 걱정하던 때가 있었지만 그것이 의미 없는 일이란 건 오래전에 깨달았다. 그는 그런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과 동시에 깨달았다.
그 앞에선 아름다움이란 급이 없고, 질이 없는, 그저 동경의 대상이었다. 끝이 있다는 것에 대한 동경은 아름다움이란 개념 앞에서 정의된다. 그렇다면 그가 끝을 쫒는다는 그 행위는 아름다움 그 자체를 쫒는 것이 되니, 그는 어느 다른 생명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된다. 무의식 속에서 이러한 사실로 위로하고 다독이는 삶이라니. 이 얼마나 비참하고 생명의 길을 착실히 따라가는 존재인가.
종이꽃,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