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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 - 꽃 닥빈 다녀오겠습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말을 하고 생텀의 문밖으로 나간다. 이제 생텀은 가끔 아무도 없는 공간이 되었다. 그 사실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분명 내가 가진 깊고 깊은 고독감, 외로움이 무생물에도 향하는 것일 테니까. … 생텀 안에선 단순히 웅성거리던 소리가 정확한 틀을 갖추어 귀에 들어온다. 들리지 않았던 사람의 발소리까지 모두 귀에 꽂힌다. 평범한 운동화부터, 높은 굽의 구두 소리까지. 참 많은 사람이 오가는데 주변 건물과 맞지 않는 건축 양식인 생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게, 이것이 마법이구나 싶었다. 아주 옛날에, 나도 마법이 있었다면-, 까지 생각이 미쳤다가 커다란 자동차의 클락션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지각하는 건 사양이..
닥빈 - 노래 유난히 오늘따라 관리해도 될 것이 적었다. 지구에 위협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늘 웡과 함께, 혹은 따로 외계의 위협을 감시하고 느슨해진 보호막을 재설계하고를 반복했다. 오늘 느껴지는 결계의 충돌은 없고, 특별히 지구를 위협하는 것의 기운이나 형태 등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인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는 우주의 위협으로 지구가 위험에 처하진 않을 확신이 생겼다. 대신 생텀의 있는 것을 감시해야 했다. 이곳에 발을 들인 지 이제 3주쯤 되어가는 것. 방 밖으로 나온 지는 며칠 되지 않았지만, 그 사이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것이 무슨 짓을 할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보아하니 대충 생텀 안을 청소하고 지정된 곳을 돌아다니는 것뿐인데, 남은 많은 시간 동안 무얼 하는지 가늠이 가지 않..
각설탕 드림 글 셜즈인데 에즈만 나오는. 셜록 위장죽음 이후에 에즈 날조함. 수많은 사람들 속의 권태. 같은 템포의 노래들, 서로 다른 목소리가 겹쳐 일정하게 같은 소리만을 만들어내는 세상. 다른 시간에 미묘하게 다른 클락션들, 늘 다른 세상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지. 이제는 끔찍한 생명의 소리들이다. 결국은 죽어버릴 존재들이다. 집에 있는 식물까지도 결국은 스러질거란 생각에, 모든 세포들이 지금도 사라지는 생명의 과정이란 것이 숨을 갑갑하게 한다. 떠날까, 떠날까? 어디로? 이곳에서 최대한 먼 곳으로. 쓸데없는 소리들, 시끄럽고 지루한 소리들이 울부짖는 곳. 밤낮가리지 않고 시끄러운 것들 사이에서 죽지 않을 영원의 감각을 느끼는 거야. 그곳에서는 평범하게 살자. 평범하게. 나의 호기심이 다시는 생명을 위협하지 않게. 그..
닥빈 - 보름 좁고 햇볕이 옅게 드는 곳에서 기이한 편안함을 느낀다. 하루에 한 번. 창문의 그림자가 온전히 문에 들어맞으면 빨간 망토를 맨 마법사가 들어온다. 하지만 노크도 없이. 오늘로 보름째. … 첫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 눈을 마주하고 무거운 침묵만을 유지했다. 둘째날은 입을 조금 달싹였다. 그뿐이었다. 어떤 말이라도 뱉어야 하나 라는 고민은 머릿속에만 있었다. 물이 채워지는 물컵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 역시나 마법사는 말이 없었다. 나중에서야 물을 마셨는데 얼마나 쥐고 있었는지 미지근해져 목을 부드럽게 넘어갔다. 셋째날에서야 이름을 말했다. 하루를 꼬박 고민하여 겨우 내뱉었다. 그것도 마법사가 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에야. 빈, 내 이름이에요. 말을 안 했더니 텁텁하게 잠긴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마..
닥빈 - 기록에 대하여 말실수. 기록이 없기 때문에. 젠장. 모든 생물은 기록을, 발자취를 남기고 심지어 무생물조차도 자신이 여기에 있었다는 흔적을 잠깐, 또는 오랫동안이라도 남긴다. 하지만 나는? … 옥보다는 푹신한 침대에, 또 깔끔한 실내와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환경. 그 모든 걸 압도하고 내리 꽂히는 시선은 움직이지도 못하는 제게 칼날과도 같이 느껴진다. 어떻게 묶고, 또 어떤 마법을 썼는지는 몰라도 긴장감에 몸에 절로 들어가는 힘에도 반응하여 몸에 따끔함을 선사한다. 말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날 죽이기라도 할까? 그래봤자 나는 다른 곳으로 갈 텐데. 날카로운 시선을 멍한 십자 동공으로 마주한다. 몸에 있는 힘을 풀어버리고 눈을 느리게 몇 번 깜박이기만 한다. 그러자 순식간에 배경이 바뀐다. 여전히 묶여있는지..
닥빈 - 마법의 오류? 닥터 스티븐 스트레인지의 떨리는 손에서 노랗게 빛나는 주홍색 실 같은 것들이 뻗어 나온다. 얇고 또 얇은 것들이 쭉 뻗어 나와 벽을 뚫고, 그와 빈의 주변을 어지럽게 두른다. 옥의 유리 벽을 중간에 둔 채 마주하는 둘의 배경이 실로 가득 채워질 즈음에 마법사는 손을 휘젓는다. 아무렇게나 젓는 듯한 행동은 순식간에 주변을 배경으로 한 실들을 복잡하고 아름다운 문양의 마법 진으로 만들어버린다. 여러 겹의 모두 다른 마법 진은 찬란하게 빛나고 주위를 밝힌다. 그 빛은 마치 태양을 닮아서 빈의 옅은 갈색 머리는 노랗게 빛을 반사한다. 맑은 금안은 더 밝아지고 검은 십자 동공만이 더는 선명해질 수 없게 진해질 뿐이었다. 빈의 머리카락 한 가닥을 뽑아간 마법사는 그 머리칼 또한 마법으로 감싸더니 화려한 마법 진 속..
닥빈 - 범죄자 -잊고 있는 것 같아서 다시 말해주도록 하지. 넌 범죄자의 신분이야. 닥터 스티븐 스트레인지는 그렇게 말한다. 잠시 바닥을 내려보던 빈은 아무 말 없이 허리를 편다. 엉망인 자세를 바로잡고 고개를 들어 십자 동공으로 그를 마주한다. 그리고 알 수 없게 입꼬릴 올려 웃을 뿐이다. 황금빛 눈은 충분히 밝음에도 감옥의 진 그림자 탓일까, 무거운 느낌을 추가할 뿐이었다. 닥터는 생각한다. 이곳에서, 좁은 감옥에서, 내보내달라고는 못할망정 되려 담요, 방석, 음식, 먹을 걸 달라는 등의 이런 곳이 익숙하다는 듯한 태도를. 그가 위협적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만큼 가벼운 언사에 장난스러운 목소리를. 그런데 이 분위기는 뭐지? 깊은 눈에 그림자가 진다. 닥터는 한 걸음 물러난다. 떨리는 손은 언제나 마법을 일으킬 준비가..